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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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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재독 한국인은 1950년대 후반부터 서독에 체류하기 시작한 대한민국 출신 학생, 간호사, 산업 연수생 등을 포함하며, 1960년대 간호사와 광부의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었다. 1960~70년대 북한은 서독 내 한국인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며, 통일 이후 일부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으로 귀환하여 남해 독일마을 건설로 이어졌다. 재독 한국인 2세들은 높은 학력을 보이며, 37개의 주말 한국어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차범근, 진은숙, 윤이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인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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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한국인
기본 정보
그룹 명칭재독 한국인
다른 이름재독 교민
인구36,000명 (2022년)
주요 거주지베를린
프랑크푸르트
사용 언어한국어
독일어
종교대승 불교
기독교(개신교, 로마 가톨릭교)
관련 민족한민족
추가 정보
재외 동포 현황31,248명 (2009년)

2. 역사

독일과 한국 간의 관계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20세기 중반 한국 전쟁 이후 서독대한민국을, 동독북한을 각각 지원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2. 1. 대한민국과 서독의 관계

195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출신 학생, 간호사, 산업 연수생들이 서독에 체류하기 시작했다.[5] 1960년대 서독간호사광부를 '가스트아르바이터'로 초청하면서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노동자 모집은 경제적 필요성뿐만 아니라, 독일처럼 이념에 의해 분단된 국가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6] 1963년 12월 16일 첫 번째 광부 그룹이 도착했으며, 이 프로그램은 주로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독일 기업들은 여행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고, 임금과 언어 훈련만 책임졌다. 이들은 같은 시대의 다른 '가스트아르바이터'에 비해 높은 교육 수준을 보였는데, 60% 이상이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교육을 마쳤다. 1966년부터 간호사들이 대거 도착하기 시작했다.[5] 한국인들은 몇 안 되는 비유럽 출신 모집단 중 하나였다. 서독의 이민 정책은 일반적으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아프리카 및 아시아 출신 노동자를 배제했다.[7] 독일에서 생활한 후, 일부 한국인들은 1965년 이민 및 국적법의 완화된 입국 기준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8]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제한된 기간의 계약으로 왔고, 대부분 처음에는 귀국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모집된 노동자의 절반이 독일에 남게 되었다. 1970년대 내내, 그들은 경제와 의료 시스템에 기여한 점을 내세우며 체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결국 서독 정부는 근로 계약이 만료된 사람들을 추방하는 것을 자제하고, 대신 다른 일자리를 찾도록 했다.[5][7]

북한과 대한민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서독 내 한국인 사회에서 영향력을 놓고 경쟁했다. 북한은 한국인 사회에서 징집하기 위해 교수들로 위장한 요원들을 서독에 파견했다.[9] 1967년, 대한민국은 서독 정부의 동의 없이 북한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 여러 한국인들을 비공개 송환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작곡가이자 후일 독일 시민이 된 윤이상이었다. 그들은 고문을 받아 허위 자백을 했고, 6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 사건 이후 서독은 대한민국 외교관 3명을 추방했고,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심각하게 고려했다.[10] 그러나 대한민국의 관심이 박정희 암살 미수 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옮겨감에 따라, 외교 관계 단절 대신 납치된 사람들의 석방을 보장하기 위해 조용히 노력했다.[11]

2011년에는 독일 내 대한민국 광부들 사이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의 애국적 노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12]

2. 2. 북한과 동독의 관계

1953년 동베를린에 도착한 북한 유학생들


2021년 독일의 행정 구역별 북한 시민 분포


동독에도 소규모의 한국인들이 거주했다. 1953년부터 1962년까지 한국 전쟁 이후 북한 재건을 위해 많은 북한 학생들이 소련 블록 대학에 입학하거나 산업 연수생으로 파견되었다. 1955년 동독 내 북한인은 학생 334명, 산업 연수생 302명, 고아 298명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중소 분쟁 심화로 북한 정부는 해외 체류 중인 자국민에게 귀국을 명령했고, 1962년까지 대부분 귀국했다. 현지인과 결혼한 사람들도 소환 명령에 따라 배우자를 두고 떠났다. 한 동독 여성은 40년 넘게 연락이 끊긴 북한인 남편의 생존을 확인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배우자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13][14]

1980년대 북한과 동독 관계가 개선되면서 약 1,500명의 북한 학생들이 동독으로 유학을 왔다.[15] 독일 통일 이후에도 평양 정부는 기술 훈련을 위해 학생들을 독일에 파견했으며, 2001년 3월 양국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북한에서 일하는 독일인들은 독일어를 구사하는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을 만났다고 보고했다.[16]

2. 3. 통일 독일과 한국

은퇴 후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기 시작한 일부 재독 한국인들은 독일인 배우자를 동반하기도 했다. 이러한 귀환은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의 건설로 이어졌다.[17]

3. 교육

독일 내 한국계 2세의 70% 이상이 아비투어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두 배가 넘는 비율이다.[5] 정규 교육 시스템 외에도 독일의 한국인들은 37개의 주말 한국어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학교인 쾰른 한국학교는 1973년 4월 10일에 설립되었다. 1970년대에는 아헨, 함부르크, 뤼셀스하임, 뒤셀도르프, 노이엔키르헨, 비켄바흐, 보훔, 하노버, 캄프린트포르트, 크레펠트, 도르트문트, 게르메링, 함민켈른에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에센, 베를린, 두드바일러, 카셀, 마를, 레버쿠젠, 오버하우젠, 괴팅겐, 슈투트가르트, 비스바덴, 브레멘, 카를스루에, 부퍼탈, 아우크스부르크, 하이델베르크, 헤르초게나우라흐, 오스나브뤼크에 학교가 설립되었다. 1990년대에는 뮌스터, 볼프스부르크, , 프라이부르크, 지겐, 림파르에 학교가 설립되었다. 2007년 기준으로 독일 전역의 모든 한국 학교의 총 학생 수는 1,748명이었다.[18]

4. 주요 인물

김유택 경제기획원장이 1962년 8월 16일, 독일로 파견될 근로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독일에서 활동했거나 활동 중인 주요 한국계 인물은 다음과 같다.

  • 마이크 레온 그로쉬: Deutschland sucht den SuperStar의 결승 진출자였던 가수이다.
  • 오길남: 신숙자와 두 딸과 함께 북한으로 귀순했다가 홀로 유럽, 독일, 덴마크로 돌아와 망명 신청을 한 경제학자이다.[20]
  • 송두율: 철학 교수이자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감되었던 전 정치범이다.[21]

4. 1. 스포츠

4. 2. 예술


  • 진은숙: 작곡가.[19]
  • 캐롤라인 피셔: 피아니스트.
  • 지인 초: Krypteria의 음악가이자 리드 보컬 겸 피아니스트.
  • 배수아: 작가 겸 번역가.
  • 병철 한: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작가, 문화 이론가 겸 교수.
  • 이인아: 햄버그 출신의 영화 감독으로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
  • 이 미록: 독일로 망명한 소설가.
  • 김일영: 사회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겸 배우.
  • 김이삭: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가수 겸 라디오 진행자.
  • 윤이상: 작곡가이자 전 정치범.[11]
  • 테오 유: 독일 태생의 한국계 배우.

4. 3. 학술 및 기타


  • 차범근,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한 유명 축구 선수로, '차붐(Tscha Bum)'으로 알려져 있다.
  • 진은숙, 작곡가.[19]
  • 캐롤라인 피셔, 피아니스트.
  • 마틴 현, 독일 아이스하키 리그(Deutsche Eishockey Liga)에서 활동한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
  • 마이크 레온 그로쉬, Deutschland sucht den SuperStar의 결승 진출자였던 가수.
  • 배수아, 작가 겸 번역가.
  • 지인 초, Krypteria의 리드 보컬이자 피아니스트.
  • 한병철,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작가, 문화 이론가 겸 교수.
  • 이인아, 함부르크 출신 영화 감독으로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
  • 이미륵, 독일로 망명한 소설가.
  • 김일영, 사회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겸 배우.
  • 김이삭, 독일 태생이나 주로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가수 겸 라디오 진행자.
  • 시모네 하우스발트, 바이애슬론 선수이자 2010년 동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 오길남, 신숙자와 두 딸과 함께 북한으로 귀순했다가 홀로 유럽, 독일, 덴마크로 돌아와 망명 신청을 한 경제학자.[20]
  • 송두율, 철학 교수이자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감되었던 전 정치범.[21]
  • 윤이상, 작곡가이자 전 정치범.[11]
  • 차두리, 축구 선수, 차범근의 아들.
  • 유태오, 독일 태생의 한국계 배우.

참조

[1] 웹사이트 Germany and the Republic of Korea (South Korea): Bilateral relations https://www.auswaert[...] 2023-04-04
[2] 뉴스 Korean Buddhist organisations in Germany http://www.buddhanet[...] 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2008-10-12
[3] 웹사이트 Active Civic Participation of Immigrants in Germany http://www.politis-e[...] European Commission 2009-03-09
[4] 웹사이트 재외동포현황/Current Status of Overseas Compatriots http://www.mofat.go.[...]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2009-05-21
[5] 웹사이트 Umgekehrte Entwicklungshilfe - Die koreanische Arbeitsmigration in Deutschland (Reverse Development Assistance - Korean labour migration in Germany) http://www.goethe.de[...] Goethe Institute 2006-01
[6] 뉴스 Two Stories of Exploitation and Integration: Double lecture on Korean and Vietnamese work migration in Germany http://english.ohmyn[...] 2007-05-30
[7] 논문 Why Germany's guestworkers were largely Europeans: The selective principles of post-war labour recruitment policy 2003-03
[8] 간행물 An ethnography of Koreans in Queens, New York, and elsewhere in the United States https://www.census.g[...] Center for Survey Methods Research, Bureau of the Census 2007-05-30
[9] 뉴스 동백림사건요? 코미디였지요 http://www.donga.com[...] The Dong-a Ilbo 2007-05-30
[10] 서적 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 https://books.google[...] W.W. Norton
[11] 뉴스 독일, 당시 국교단절 검토: 67년 윤이상씨등 서울로 납치 '동백림사건' 항의 (Germany considered breaking off relations at the time: Protests over the 1967 "East Berlin incident" kidnapping of Isang Yun and others) http://www.hani.co.k[...] 2007-05-30
[12] 뉴스 파독광부들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 http://www.yonhapnew[...] 2011-12-08
[13] 서적 Die DDR und Nordkorea. Der Wiederaufbau der Stadt Hamhŭng von 1954–1962 Shaker 1996-12
[14] 뉴스 North Korean husband of German woman is alive http://joongangdaily[...] 2007-05-31
[15] 뉴스 An Anti-Reform Marriage of Convenience http://www.dailynk.c[...] 2011-06-04
[16] 뉴스 Germany Gets Maximum Concessions from NK http://english.chosu[...] 2007-05-31
[17] 뉴스 In a Corner of South Korea, a Taste of German Living https://www.nytimes.[...] 2007-05-30
[18] 웹사이트 Overseas Korean Educational Institutions: Germany http://www.interedu.[...] National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ducation Development, Republic of Korea 2007-05-31
[19] 논문 Unsuk Chin in focus: Meditations and mechanics https://dx.doi.org/1[...] The Musical Times, Vol. 141, No. 1870 2000
[20] 뉴스 A family and a conscience, destroyed by North Korea's cruelty https://www.washingt[...] 2010-02-25
[21] 논문 Democracy and National Security in South Korea: The Song Du Yol Affair http://japanfocus.or[...] 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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